금주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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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INWARDOUTWARD 묵상 – 책임, 존재의 응답으로서의 삶 2025.11.09 10:28:48

작성자박성중 조회수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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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존재의 응답으로서의 삶


오늘의 사회에서 ‘책임’은 무겁지만 동시에 공허한 단어가 되었습니다. 정치인은 실수를 ‘유감’이라 표현하고, 기업은 ‘사과문’으로 책임을 대체합니다. SNS 시대의 개인은 타인의 잘못에 분노하지만, 정작 자기 말의 무게에는 둔감합니다. 책임은 더 이상 ‘응답해야 할 의무’라기보다 ‘법적 절차의 종결’로 축소되었습니다. 이는 공동체의 위기이자, 인간 존재의 도덕적 퇴화를 의미합니다. 책임은 원래 ‘관계의 언어’이며, 타자와 세계에 대한 응답의 태도다. 그러나 오늘의 사회는 관계보다 자아의 욕망을 앞세우며, 책임을 ‘자기보존의 기술’로 전락시켰습니다.


철학적으로 ‘책임(Responsibility)’은 응답(response)의 가능성에 근거합니다. 라틴어의 어원으로 ‘re-’, ‘다시’와 ‘spondere’ ‘약속하다’의 의미입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이진우 옮김, 한길사, 201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행동은 언제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간은 자신의 행위가 세계에 미치는 결과를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즉, 책임은 ‘행위의 결과에 대한 사유의 지속성’입니다. 그리고 ‘감당’입니다.


또한 에마뉘엘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는 『전체성과 무한』(김상환 옮김, 민음사, 2016)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임을 ‘타자 앞에서의 존재론적 조건’으로 정의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나는 타자에게 인질이다. 나의 자유보다 먼저 타자의 부름이 있다.”

이 말은 책임을 자유의 결과가 아니라 자유의 출발점으로 전환시킵니다. 타자의 고통 앞에서 인간은 응답할 수밖에 없는 존재, 곧 책임 그 자체로 부름받은 존재입니다.


성서에서 ‘책임’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이웃 사이의 언약적 관계로 드러납니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 4:9, 새번역)라고 말합니다. 이는 책임 회피의 원형입니다. 가인은 단지 살인을 저지른 것이 아니라, 타자를 향한 응답의 언어를 거부한 것입니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가 책임의 궁극적 표상으로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0장 11절(새번역)에서

“나는 선한 목자이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그리스도의 책임은 단지 도덕적 감정이 아니라 존재를 건 응답입니다.


책임은 응답의 언어입니다. 나를 넘어 타자에게, 현재를 넘어 미래에게, 인간을 넘어 하나님께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철학은 그것을 ‘타자의 부름에 대한 응답’이라 하고, 성서는 그것을 ‘하나님과의 언약’이라 부릅니다.

오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책임이란 벌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라는 사실입니다. 책임지는 인간은 짐을 진 자가 아니라, 의미를 지닌 자입니다. 따라서 책임은 인간을 구속하는 사슬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유일한 자유의 이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