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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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WARDOUTWARD 묵상 – 내재적 정의 - Dietrich Bonhoeffer 2024.08.01 22:49:27

작성자박성중 조회수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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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재적 정의


가장 놀라운 발견 중 하나이지만 가장 논란의 여지가 없는 발견 중 하나는 바로 악이-종종 놀라울 정도로 짧은 시간에- 자신의 어리석음을 입증하고 자신의 목적을 무너뜨리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악이 즉시 자동으로 응보로 이어진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보존을 구실로 신성한 법을 고의적으로 범하는 것이 자기 파멸의 반대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 배운 것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한 가지 확실한 결론은 사회 생활이 결정적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요소보다 더 강력한 특정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법을 무시하는 것은 부당할 뿐만 아니라 확실히 현명하지 못한 일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중함을 주요 미덕 중 하나로 삼은 이유일 것입니다. 신중함과 어리석음은 일부 신 개신교와 태도 윤리학이 밝혀내려고 노력한 것처럼 윤리적 아디아포라(역자주: 선도 아닌 악도 아닌, 아무렇지 않은 것)가 아닙니다. 신중한 사람은 모든 구체적인 상황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사회 생활의 영원한 법에 의해 정해진 인간 행동의 한계도 봅니다. 신중한 사람은 덕스럽게 행동하고, 덕 있는 사람은 신중하게 행동합니다.


- Dietrich Bonhoeffer,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와 글』, 25~26쪽.



IMMANENT RIGHTEOUSNESS


It is one of the most astounding discoveries, but one of the most incontrovertible, that evil-often in a surprisingly short time-proves its own folly and defeats its own object. That is not to say that every evil deed is at once followed automatically by retribution. But it does mean that the deliberate transgression of the divine law on the plea of self- preservation has the opposite effect of self-destruction. This is something we have learnt from our own experience, and it can be interpreted in vari- ous ways. But one certain conclusion we can draw from it seems to be that social life is governed by certain laws more powerful than any other factors which may claim to be determinative. Hence it is not only unjust, but positively unwise to ignore these laws. Perhaps that is why Aristotle and St. Thomas Aquinas made prudence one of the cardinal virtues. Prudence and folly are not ethical adiaphora, as some Neo-protestant and Gesinnungs-ethics have tried to make out. The prudent man sees not only the possibilities of every concrete situation, but also the limits to human behaviour which are set by the eternal laws of social life. The prudent man acts virtuously and the virtuous man prudently.


-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pp.25~26.




오늘날 선에 대해 부재, 상대주의, 이기주의를 말합니다. 부재는 선을 경험하지 못하는 좌절이고, 상대주의는 선은 상대성을 이기주의는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이 선이라는 이해입니다. 너무 자주 선이 어디에 있는가 묻게 되고, 누구에게는 선이지만 누구에게는 선이 아닌 상황을 보며, 자신의 이익에 따라 선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타깝게도 인간 판단의 한계는 선에 대한 분명하고 명확한 정의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분명한 것은 우리가 선이라는 궁극성을 놓았을 때 발생하게 될 문제들입니다. 선이 없다는 생각과 이에 따른 행동은 인간을 보다 더 악하게 만들 것이며, 결국 보다 더 큰 악을 경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옛 생활 방식을 버리고 새 생활 방식을 제안합니다. 지혜로운 삶입니다. 이 지혜로운 삶의 바탕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바로 그 지혜의 중심에 자신을 두지 않고 하나님을 두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한 삶, 지혜로운 삶을 묻는다면 바로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살피십시오. 지혜롭지 못한 사람처럼 살지 말고, 지혜로운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16  세월을 아끼십시오. 때가 악합니다.

17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으십시오.


- 에베소서 5:15~17


written and translated b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