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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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WARDOUTWARD 묵상 – 성공에 대하여 - Dietrich Bonhoeffer 2024.06.20 09:31:18

작성자박성중 조회수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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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대하여


성공이 악을, 게다가 또는 의심되는 수단들의 사용을 정당화시킬 수 없더라도 그것은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것은 아닙니다. 그 같은 모든 것에서, 역사적 성공이 삶의 지속을 위한 기초를 만든다는 것은 진실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아직 논쟁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이 돈키호테처럼 행동하는 것보다 더 윤리적으로 책임적인지 아닌지,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들어가는 것이 또는 어떤 이의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것에 봉사하는 것에 동의하는 것보다 더. 결국에는 성공이 역사를 만듭니다. 그리고 역사의 감독자는 항상 역사를 만드는 이들의 머리 위에서 악을 넘어서 항상 선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성공의 윤리적 중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겉으로 드러나는 지식과 결여된 책임감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공의 윤리라는 이러한 문제에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 한 번쯤 강요되는 것은 모두 좋은 일입니다. 선함이 성공적인 모든 순간마다, 우리는 윤리적 중요성이 없는 것으로서 성공을 간주하는 사치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성공이 악한 수단에 의해 성취될 때 발생합니다. 안락의자에 앉은 비평가처럼 행동하는 것과 논쟁을 벌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실을 직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회주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성공하기 전에 항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분노한 비평가나 단순한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을 결심해야 합니다.


- Dietrich Bonhoeffer,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와 글』, 20~21쪽.



OF SUCCESS


Though success can never justify an evil deed or the use of questionable means, it is not an ethically neutral thing. All the same it remains true that historical success creates the only basis for the continuance of life, and it is still a moot point whether it is ethically more responsible to behave like Don Quixote and enter the lists against a new age, or to admit one's defeat, accept the new age and agree to serve it. In the last resort success makes history, and the Disposer of history is always bringing good out of evil over the heads of the history-makers. To ignore the ethical significance of success is to betray a superficial acquaintance with history and a defective sense of responsibility. So it is all to the good that we have been forced for once to grapple seriously with this problem of the ethics of success. All the time goodness is successful we can afford the luxury of regarding success as having no ethical significance. But the problem arises when success is achieved by evil means. It is no good then behaving as an arm-chair critic and disputing the issue, for that is to refuse to face the facts. Nor is opportunism any help, for that is to capitulate before success. We must be determined not to be outraged critics or mere opportunists.


-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pp.20~21.



성공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자주 집단의 이득을 성공이라 말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은 그보다 자주 집단의 이름을 빌린 자신의 성공인 경우가 있습니다. 집단의 성공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편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본 회퍼 당시의 독일 히틀러 정권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작은 모습에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성공이라는 이름의 작은 결정들이 결국 자신의 이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발뺌한다고 해도 결론을 보면 타자를 수단화한 이기적인 의식적 무의식적 사실입니다.


성공이 자신의 이기를 벗어나서 ‘윤리적’이기 위해서는 타자(他者)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이 타자는 타자화된 자신(칸트의 정언명령적)이며 이웃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입니다. 

이때 성공이 하나님, 이웃 앞에서 성공일 경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성공이며, 윤리적이라 부를 것이며,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성공이라 할 것입니다.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2  오로지 주님의 1)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2)묵상하는 사람이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4  그러나 악인은 그렇지 않으니, 한낱 바람에 흩날리는 쭉정이와 같다.

5  그러므로 악인은 심판받을 때에 몸을 가누지 못하며, 죄인은 의인의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다.

6  그렇다.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것이다.


- 시편 1:1~3



written and translated b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