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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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WARDOUTWARD 묵상 – 시민적 용기? - Dietrich Bonhoeffer 2024.06.15 17:21:30

작성자박성중 조회수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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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적 용기?



시민적 용기의 결핍에 대한 불만의 이면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지난 10년간 용기와 자기희생이라는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서 시민적 용기는 거의 없습니다. 이것을 개인적인 비겁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 안이한 심리학일 것입니다. 그 배경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오랜 역사 속에서 우리 독일인들은 순종의 힘과 필요성을 배워왔습니다. 모든 개인적 욕망과 의견을 의무로의 소명에 종속시키는 것이 삶에 고귀함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우리는 위를 바라보며, 비굴한 두려움 속에서가 아닌 자유로운 신뢰 속에서 우리의 의무를 소명으로, 소명을 신명으로 여겼습니다.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한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보다는 위의 명령을 따르려는 이러한 준비는 정당한 자기 불신의 표시였습니다. 우리 독일인들이 복종과 의무, 소명을 통해 계속해서 용기와 자기 희생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누가 부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일인은 공동체를 위한 봉사를 통해 자신의 의지로부터의 구원을 추구함으로써 자신의 자유를 보존했습니다. 루터에서 관념주의자에 이르기까지 우리만큼 자유에 대해 그토록 열정적으로 이야기한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 Dietrich Bonhoeffer,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와 글』, 19~20쪽.



CIVIL COURAGE?


What lies behind the complaint about the dearth of civil courage? The last ten years have produced a rich harvest of bravery and self-sacrifice, but hardly any civil courage, even among ourselves. To attribute this to personal cowardice would be an all too facile psychology. Its background must be sought elsewhere. In the course of a long history we Germans have had to learn the necessity and the power of obedience. The subordination of all individual desires and opinions to the call of duty has given meaning and nobility to life. We have looked upwards, not in servile fear, but in free trust, seeing our duty as a call, and the call as a vocation. This readiness to follow a command from above rather than our own private opinion of what was best was a sign of a legitimate self-distrust. Who can deny that in obedience, duty and calling we Germans have again and again excelled in bravery and self-sacrifice? But the German has preserved his freedom―what nation has talked so passionately of freedom as we have, from Luther to the idealists?―by seeking deliverance from his own will through service to the community.


-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pp.19~20.



일제강점기. 개인이 용기를 내어 책임적 행동을 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개인에게 묻는 것을 통해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일제강점기라는 구조를 통해 보아야 합니다. 친일의 많은 순간 그들은 예를 들어 어느 시인은 종천순일(從天順日), “하늘을 따라 일본에 순종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는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다른 이들은 당연한 것이라고 했고, 또 다른 이들은 도움이었다 주장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시민의 용기를 가로 막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늘의 이치라는 주장, 사람의 위 아래를 말하는 가부장적 체계, 계급주의도 여전합니다. 이 안에 개인이 용기를 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우리 모두를 용기 있는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이들은 용기를 낼 수 있으며, 용기 있게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 삶을 예수를 통해 보이셨고, 그 삶 위에 성령 하나님이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이때 인간은 누구도 아닌 스스로가 될 수 있습니다.



33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한 것은, 너희가 내 안에서 평화를 얻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


- 요한복음 16:33



written and translated by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