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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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WARDOUTWARD 묵상 –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1943년 5월 15일 - Dietrich Bonhoeffer 2024.11.10 18:56:30

작성자박성중 조회수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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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515

 

당신들에게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에는, 모든 준비가 끝났을 것이고 결혼식 자체도 끝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거기에 직접 있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지난 날의 모든 복에 감사하며 돌아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에 기뻐하고 있습니다. 설교의 본문이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로마서 157절입니다. 제가 자주 사용했던 말씀입니다... 그들은 얼마나 놀라운 여름 날씨를 보내고 있는지? 오늘 아침 찬송은 폴 게르하르트(Paul Gerhardt, 1607~1676, 루터교회 목사, 찬송가 작가, 역자 주)의 황금빛 태양(Die güldne Sonne)인 것 같습니다.

당신들의 편지가 드디어 왔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은 저 자신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여러분의 소식을 들을 때마다 너무 기쁩니다. 조금이라도 서로 만나서 짧은 대화라도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사랑스럽고 위안을 얻을지.

외부 사람들은 당연히 수형 생활이 어떨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 자체로, 즉 매 순간 이곳의 삶은 지금까지 다른 곳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읽고, 명상하고, 쓰고, 감방을 서성거리며 시간을 보냅니다. 북극곰처럼 벽에 아프게 문지르지 않고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가진 것와 할 수 있는 것(아직 많이 남아 있음)을 최대한 활용하고 상황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원한과 불만의 감정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저는 성서과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독일의 종교개혁가)가 말하는 영적 시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토록 분명하게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주 갑자기, 육체적이든 심리적이든 드러나는 이유 없이 지금까지 중심이 되어 왔던 평화와 평온이 흔들리기 시작하고, 예레미야의 인상적인 구절을 따르면 마음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반항적이고 낙담한 상태가 됩니다. 그것은 마치 악의 세력이 인생의 가장 소중한 보물 중 하나를 빼앗으려고 하는 것처럼 외부로부터의 침입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삶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건전하고 필요한 경험입니다. 저는 단지 "시간의 느낌"(Zeitgefühl)에 관한 에세이를 시험 중일 뿐입니다. 이는 저처럼 구금되어 조사를 받는 사람의 특별한 관심 주제입니다. 제 전수감자 중 한 명이 이 감방 문 위에 "100년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라는 문구를 썼습니다. 그것은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극복하려는 그의 방식이었습니다. 그 주제에 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아버지와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내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편 31:16) 이것이 성서의 대답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묻는 질문, 전체 주제를 위협하는 질문도 있습니다.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시편 13).

고트헬프(알베르트 비치우스(Albert Bitzius)의 필명, 1797~1854, 스위스 소설가, 역자 주)의 베르네의 정신(Berner Geist)을 읽어야 합니다. 전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첫 부분은 읽어야 합니다. 그것은 매우 독특하며 확실히 당신들의 관심을 끌 것입니다. 저는 쇠네 어르신이 항상 고트헬프에 대해 특별한 찬사를 보냈던 것을 기억하며 디터리히 출판사에 고트헬프의 선집 출판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슈티프너(Adalbert Stifter, 1805~1868, 보헤미아-오스트리아의 작가, 시인, 화가, 교육자)의 배경은 주로 그리스도교입니다. 그의 숲속 풍경은 종종 프리드리히스브룬의 조용한 공터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합니다. 그러나 그는 놀랍도록 명확하고 단순하기는 하지만 고트헬프만큼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큰 기쁨을 줍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에 관해 서로 이야기할 수만 있다면. 관상 생활에 대한 제 모든 동정에도 불구하고, 저는 타고난 트라피스트가 아닙니다! 일시적인 침묵의 규칙은 좋은 것일 수 있으며, 가톨릭 신자들은 최고의 성서 강해가 순전히 관상적인 순서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저는 성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욥기를 이제 막 읽게 되었습니다. 저는 수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매일 시편을 읽고 있습니다. 저는 그 책들을 알고 있으며 성서의 다른 어떤 책보다 더 사랑합니다. 시편 3, 47, 70편 등을 읽을 때마다 저는 항상 쉬츠(Heinrich Schütz, 1585~1672, 독일 작곡가)의 설정에서 그 내용을 듣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 그의 음악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R.이었고 저는 그것이 제 인생의 가장 큰 풍요로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자신이 여러분 모두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떨어져 있을 때에도 서로를 위해 행동하고 생각하며 공동으로 살고 모든 것을 짊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 Dietrich Bonhoeffer, 감옥으로부터 온 편지와 글, 39-42.

 

 

May 15th 1943

 

By the time this letter reaches you, all the preparations will be finished and the wedding itself will be over, including my own disappoinment that I wasn't there myself. I am looking back with gratitude on all the blessing of the past and am rejoicing with them all. I wonder what the text of the sermon will be. The best I can think of is Romans 15.7, a text I have often used myself... What marvellous summer weather they are having. I guess this morning's hymn was Paul Gerhardt's Die güldne Sonne.

Your letter has come at last. Many thanks. My parental home has become so much a part of myself that every time I hear from you I am overjoyed. If only we could at least see one another and have even a short chat, how lovely it would be, and what a reliefl.

People outside naturally find it difficult to imagine what prison life must be like. In itself, that is, each single moment, life here is not very different from anywhere else, so far. I spend my time reading, meditating, writing, pacing up and down my cell-without rubbing myself sore on the walls like a polar bear! The important thing is to make the best use of one's possessions and capabilities-there are still plenty left-and to accept the limits of the situation, by which I mean not giving way to feelings of resentment and discontent. I have never realized so clearly what the Bible and Luther mean by spiritual trial. Quite suddenly, for no apparent reason, whether physical or psychological, the peace and placidity which have been a mainstay hitherto begin to waver, and the heart, in Jeremiah's expressive phrase, becomes that defiant and despondent thing one cannot fathom. It is like an invasion from outside, as though evil powers were trying to deprive one of life's dearest treasures. But it is a wholesome and necessary experience which helps one to a better understanding of human life. I am just trying my hand at an essay on "The feeling of time" (Zeitgefühl), a topic of peculiar interest to one like myself who is held in custody for examination. Over the door of this cell one of my predecessors here has scribbled the words "In 100 years it will all be over." That was his way of trying to overcome the feeling that time spent here is a complete blank. There is much to be said on the subject, and I should like to talk it over with Papa. "My time is in thy hand" (Psalm 31.16)-that is the Bible's answer. But there is also a question which the Bible asks, and which threatens to dominate the whole subject: "Lord, how long?" (Psalm 13).

You really ought to read Gotthelf's Berner Geist, and if not the whole of it, at least the first part. It is quite unique, and will certainly interest you. I remember how old Schoene always had a special word of praise for Gotthelf, and I should like to suggest to the Diederich Press that they bring out a Gotthelf anthology. Stifter's background is mainly Christian. His woodland scenes often make me long to be back again in the quiet glades of Friedrichsbrunn. But he is not so forceful as Gotthelf, although he is wonderfully clear and simple, which gives me a great deal of pleasure. If only we could talk to one another about these things. For all my sympathy with the contemplative life, I am not a born Trappist! A temporary rule of silence may be a good thing, and Catholics tell us that the best expositions of Scripture come from the purely contemplative orders. I am reading the Bible straight through from cover to cover and have just got to the Book of Job, a firm favourite of mine. I am reading the Psalms daily, as I have done for years. I know them and love them more than any other book in the Bible. Whenever I read Psalms 3, 47, 70 and others, I always seem to hear them in the settings by Schütz. It was R. who first introduced me to his music, and I count it one of the greatest enrichments of my life.

I feel myself so much a part of you all that I know we live and bear everything in common, acting and thinking for one another even when we are separated.

 

- Dietrich Bonhoeffer, Letters and Papers from Prison(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pp.39-42.

 

 

인간은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에 대해 여러 가지로 해석해 왔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주님, 언제까지입니까?” (시편 13) 질문으로 시작해 내 때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시편 31:16)라고 고백합니다.

 

맞습니다. "100년 안에 모든 것이 끝날 것입니다."

인류의 이러한 고백은 지금 여기(nunc et hic)의 의미 있는 삶을 요청합니다. 결과에 집착함 없이 오늘을 바르게 살아내기.

 

그렇게 우리는 오늘을 살고 또 미래를 만들 수 있습니다.

 

 

19 내가 겪은 그 고통, 쓴 쑥과 쓸개즙 같은 그 고난을 잊지 못한다.

20 잠시도 잊을 수 없으므로, 울적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21 그러나 마음 속으로 곰곰이 생각하며 오히려 희망을 가지는 것은,

22 주님의 한결같은 사랑이 다함이 없고 그 긍휼이 끝이 없기 때문이다.

 

예레미야 애가 3:19-22

 

 

written and translated by park